KR Trip

빵만 사고 가면 섭섭한 대전

대전역에 내리면 먼저 분주함이 밀려온다. 플랫폼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고, 역 앞 도로에는 차들이 쉼 없이 오간다. 높은 건물과 상가, 사람들로 붐비는 풍경. 이 모습만 보고 있으면 대전이 오래된 철도도시라는 사실도 잠시 잊게 된다. 역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본다. 조금 걷자 분위기가 달라진다. 넓던 도로는 골목으로 좁아지고, 높은 건물 사이로 낮은 지붕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소제동이다.

역 뒤에 사람들이 살았다

대전이 지금처럼 큰 도시로 성장하는 데 철도를 빼놓기 어렵다. 경부선이 놓이고 호남선이 갈라지면서 대전역으로 사람과 물자가 모였다. 열차가 늘어나자 그 열차를 움직이는 사람도 필요해졌다. 기관사와 역무원, 차량을 정비하는 사람, 선로를 관리하는 사람까지. 많은 철도 종사자가 대전역을 중심으로 일했고, 그들은 역 가까이에 살았다.

지금이야 출퇴근 거리가 조금 길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철도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긴급한 상황에도 곧바로 대응해야 했던 시절에는 달랐다. 특히 증기기관차가 달리던 때에는 석탄과 물을 채우고 차량을 정비하는 데도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역 주변에는 철도 직원들이 살 수 있는 관사가 들어섰다. 소제동도 그중 하나였다.

대전역 주변에는 여러 철도관사촌이 있었다. 비교적 고위직 직원들이 근무하는 역전시장 부근의 남관사촌, 중간 간부용 관사들이 사용했던 대전역 서광장 북쪽의 북관사촌, 그리고 지금까지 비교적 많이 알려진 곳이 소제동이다. 1930~40년대에 지어진 관사들이 소제동 일대에 남아 있는데, 원래 일제강점기에 철도 운영을 위해 조성된 사택지였다. 지금 카페와 식당으로 쓰이는 건물 상당수가 이 시기에 지어진 관사다. 예쁜 골목이지만, 그 밑에는 그런 역사가 깔려 있다.

이 골목 아래에는 호수가 있었다

소제동을 걷다가 들어간 대전전통나래관에서 조금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골목과 건물이 들어선 이 일대에는 원래 ‘소제호(蘇堤湖)’라는 호수가 있었다. 이 호수의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중국 쑤저우의 아름다운 호수에 견줄 만하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과 북송의 시인 소동파가 항저우 자사로 있을 때 서호의 토사를 준설하며 쌓은 제방 ‘소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소제동의 이름에 남은 ‘소제’라는 지명 자체가 이 호수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철도가 놓이고 도시가 커지는 과정에서 호수는 메워졌다. 대동천의 물길을 새로 내는 치수사업도 함께 진행됐고, 그렇게 마련된 땅에 철도관사들이 들어섰다.

지금 걷고 있는 골목 아래에 한때 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익숙해 보이던 동네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철길이 놓이자 역 주변에 사람이 모였고, 집이 생기고 마을이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호수는 사라지고 물길도 바뀌었다.

관사였던 집에 잠시 머물다

소제동은 목적지를 정해놓고 빠르게 돌아보기보다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걷는 편이 잘 어울린다. 한 블록을 돌았는데 다시 비슷한 집이 나타나기도 하고, 골목 끝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마당을 만나기도 한다. 눈에 들어오는 카페가 있다면 잠시 쉬어가도 좋다.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본다. 조금 전 걸어온 골목으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오래된 담장 너머로는 낮은 지붕이 이어진다. 관광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사는 집도 골목 사이사이에 남아 있다. 오래된 동네의 생활감과 새로 들어선 공간이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이다.

집들도 자세히 보면 제각각이다. 오래된 형태를 비교적 많이 남긴 곳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고쳐 쓴 곳도 있다. 그래도 집의 크기와 골목의 폭을 보면 이곳이 처음부터 여행객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금세 알 수 있다.

원래 이 길을 매일 오가던 사람들은 여행객이 아니었다. 역으로 출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철도 직원과 그 가족들이었다. 지금 사진을 찍으며 걷는 이 골목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출근길이었고 집 앞길이었다. 지금도 이 골목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고 나면 조금 전까지 보던 골목도 달리 보인다.

그래서 이곳은 대전역과 함께 보아야 더 잘 보인다. 대전역이 커지면서 소제동에 철도관사촌이 생겼고, 그곳에서 수많은 철도인의 하루가 이어졌다. 철도는 사람을 다른 도시로 데려갔고, 역 주변에는 그 철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살아갈 동네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 그 동네는 또 한 번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중이다.

INTERVIEW

이주희 경영본부
계약처 과장

평소 직원들이 식사나 커피를 즐기러 자주 찾는 소제동 바로 건너편에 있는 관사촌 골목은 오늘 처음 와봤습니다. 직접 와보니 오래된 관사와 주변 풍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편하게 찾을 수 있으면서도 소제동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인 것 같아 다른 분들도 많이 와보셨으면 좋겠어요~!

원아현 경영본부
경영노무처 과장

솔직히 소제동을 자주 가면서도 이전에는 몰랐는데,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더라고요. 하지만 아픔이 깃든 장소라고 해서 무조건 허물어버리기보다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현대적인 문화 공간으로 재생해 나가는 모습이 매우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기억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에 새로운 생기와 경제적 가치를 불어넣는 긍정적인 발전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지혜롭게 상생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류수민 기획본부
재무처 과장

매일 창밖으로만 내려다보던 소제동 관사촌을 직접 걸으며 인터뷰하니 느낌이 색달랐습니다. 오래된 공간이 예쁜 카페와 골목으로 새롭게 피어나는 모습에서 우리 철도가 가진 매력을 제대로 느끼고 갑니다!

 

유잼 있는 대전 여행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대전은 성심당 빼고는 볼 게 없다”라고. 천만의 말씀. 대전역에 내려 조금만 걸어도 철도관사촌이 남은 소제동이 나오고, 서광장 쪽으로 나오면 중앙로와 은행동, 대흥동까지 원도심의 볼거리가 이어진다. 하루쯤 차 없이 움직여도 제법 알차게 다닐 수 있는 곳이 대전이다.

대전역 인근으로 떠나는 도보 코스
  • #1

    소제동

    대전역 동광장 뒤편에 남은 철도관사촌이다. 1920년대 소제호를 메운 자리에 철도 종업원과 기술자들의 관사가 들어섰고, 전쟁과 도시화를 거치며 소제동의 동관사촌이 남았다. 지금은 오래된 관사를 살린 카페와 식당이 골목 곳곳에 들어서 있다.

  • #2

    대전근현대사전시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낡은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장소다. 근대 관청 건물 중에서도 오래된 건축물로, 영화 〈서울의 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의 촬영지로도 이용됐다. 레트로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방문해 볼 만하다.

  • #3

    테미오래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함께 조성된 옛 충남도지사 관사촌이다. 2012년까지 관사로 사용됐으며, 현재는 당시의 건축과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근대 관사 여러 채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모여 있다.

  • #4

    테미문학관

    테미공원 정상에 있던 1979년 건립 옛 테미도서관을 고쳐 2026년 3월 문을 연 공간이다. 대전 문인들의 육필 원고와 초판본, 사진 등을 모은 문학 아카이브와 상설·기획전시실, 북카페와 워크룸을 갖췄다.

  • #5

    보문산큰나무전망대

    2026년 봄 새롭게 문을 연 대전의 전망 명소다. 실내 파노라마 전망 공간과 야외 전망대에서 대전 원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다. 낮 풍경도 좋지만 밤 9시까지 운영되니 야경 코스를 추천한다.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 #6

    비범

    공단 직원들이 추천한 소제동의 퓨전 한식집. 우대갈비와 고추장 동파육, 육회비빔밥처럼 익숙한 한식을 조금 색다르게 풀어낸 메뉴가 중심이다. 소제동 골목을 충분히 걷고 든든하게 한 끼 먹고 싶을 때 들르기 좋다.

    대전시 동구 수향길 99
  • #7

    풍류소제

    오래된 한옥 주변을 빼곡하게 둘러싼 대나무숲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카페다. 대나무정원과 테라스정원으로 꾸민 공간은 2024년 민간정원으로 등록됐다. 골목 안에 숨어 있어 소제동 산책 중 잠시 머물기 괜찮은 곳이다.

    대전시 동구 수향길 31
  • #8

    소설

    테미오래 인근의 주택을 활용한 작은 카페. 커피와 마들렌 등 구움과자를 함께 즐길 수 있으며, 테미오래와 테미문학관을 둘러본 뒤 잠시 쉬어가기 좋은 위치에 있다.

    대전시 중구 보문로205번길 6
Daejeon Information
  • 보문산큰나무전망대까지 덜 걷고 싶다면

    대전역에서 택시나 차량을 이용한다면 전망대가 아닌 목재문화체험장으로 향하자. 지도앱에서 전망대를 검색해 따라가면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반면 목재문화체험장 주차장에 내리면 도보 10분 내외로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 짐을 먼저 내려놓고

    대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빵 투어를 많이 한다. 빵을 사거나 짐을 보관할 때는 대전역의 물품보관함을 이용하자. 3층 매표창구 부근과 3층 3~4번 홈 부근에 있다. 외부 보관함보다 금액이 저렴한 편이다. 대전시 트래블라운지에서도 짐을 무료로 보관할 수 있다. 대전역에서 도보 이동을 해야 하므로, 대전역 보관함이 만석일 때 활용해보자. 단, 당일 오후 9시까지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 기차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면 소제동으로

    소제동은 대전역 동광장에서 걸어서 닿을 수 있어 별도의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에 잠시 들를 수 있어 일정의 첫 코스나 마지막 코스로 넣기 좋다.

  • 빵을 안 살 수 없지

    대전 여행에서 성심당을 빼놓기는 어렵다. 성심당에서 빵을 구매한 뒤 먹을 공간이 필요하다면, 성심당 본점에서 2분 정도 떨어진 성심당문화원으로 가보자. 성심당에서 구매한 빵을 먹을 수 있고, 3~5층은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현재 7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어 성심당의 역사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대전시 중구 중교로73번길 11
  • 빵만을 위해

    지인이 말했다. “대전의 빵 퀄리티는 평타 이상”이라고. 성심당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각자 자신 있는 빵 종류를 가지고 독립했기에, 괜찮은 가격과 평균 이상의 품질을 선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100%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전에 맛있는 빵집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이를 증명하듯 대전에는 빵집 투어를 하는 택시와 버스가 있고, 빵 특화 축제도 열린다. 2021년부터 매년 가을 진행된 ‘대전빵축제’는 올해 10월 17일부터 18일까지 대전 엑스포과학공원 한빛탑 일원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