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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이라는 이름의 회귀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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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열차의 시작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1990년대 영상을 봤다. 집중호우로 물이 가슴팍까지 차올랐는데도 사람들은 그 비를 뚫고 웃으며 출근하고 있었다. 또 다른 영상은 귀성길 고속도로 정체가 담긴 영상이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6시간 걸린다는 뉴스와 함께, 차가 빽빽한 도로 위에서 사람들은 밥을 짓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댓글에는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 “저 시절엔 저게 어떻게 가능했지?” 같은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에겐 그보다 더 강인했던 시절도 있었다. 바로 1960년대 귀성열차를 타던 시절들이다.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청운의 뜻을 품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당시 서울역은 상경한 이들이 처음 도착하는 관문이었다. 그들은 공사판과 공장으로, 혹은 식모살이로 흩어졌다. 낯선 타향살이는 녹록지 않았고, ‘서울 가면 눈 뜨고 코 베인다’라는 말도 그 무렵 생겨났다. 하지만 명절이 되면 서울로 몰려들었던 이들이 방향을 바꿔 일제히 고향으로 향했다. 당시 귀성길은 기차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가용 보급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였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것도 1970년에 이르러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귀성 전쟁’이 생겨났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

1960년대 귀성열차 사진 자료를 보면, 이미 발 디딜 틈 없는 객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창문을 넘어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리가 없다 보니 통로와 화장실 바닥은 물론, 짐 선반 위에까지 걸터앉았다. 1967년의 완행열차는 정원이 87명이었는데 3배 가까운 230명이 탑승했다고 한다. 그 빽빽한 객실 안에서 러닝셔츠 바람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보이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기차 난간 손잡이를 붙잡고 외벽에 매달리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기차 외벽에 매달린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혀를 차지만, 불과 두어 세대 전 대한민국도 그에 못지않게 억척스럽게 버텨내야 했던 시대였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참사도 벌어졌다. 설을 이틀 앞둔 1960년 1월 26일 밤 9시 50분, 목포행 완행열차를 타려던 귀성객들이 좁은 계단에서 한꺼번에 넘어지며 31명이 압사하고 38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완행열차의 자리를 잡으려 일제히 뛰다 벌어진 비극이었다. 결국 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과 역무원들이 동원한 것은 5m 길이의 대나무 장대였다. 마치 시위를 진압하는 것처럼 장대를 휘두르기도 하고, 사람들을 줄 세우는 데 쓰기도 했다. 장대에 맞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이 안 가는 풍경이지만, 당시로선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

차표와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지금도 명절이 다가오면 ‘전 국민 티켓팅’이 시작된다. 예매가 시작되는 날이면 마치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구하듯 치열한 광클을 해야 한다. 아니, 고향집 한 번 가겠다는데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가 싶다.

물론 배부른 투정이긴 하다. 지금같이 100% 비대면 예매가 정착된 것은 2020년 코로나19 때였고, 그전에는 표를 구하려 기차역에서 밤을 새웠기 때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역 대합실도 아닌 여의도 광장 바닥에서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며칠씩 줄을 섰다.

승용차와 고속버스가 보급된 뒤에도 기차의 인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명절 도로 정체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성열차표가 귀하다 보니 암표도 기승을 부렸다. 조직폭력배들이 표를 사재기해 버젓이 암표 장사를 벌였고, 인파로 북적이는 기차역 주변에는 암표상뿐 아니라 소매치기와 날치기도 들끓었다. 고향에 가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했던 시절이었다.

회귀의 귀성열차

귀성(歸省)이라는 단어에는 본래 조상의 묘를 살핀다(省墓)는 뜻이 담겨 있다. 인공지능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코스피가 최고치를 경신하는 시대를 살면서도 명절이 되면 우리는 죽음 너머의 세계와 그곳에 머무는 조상의 영혼을 믿던 전통적 세계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제는 성묘의 의미도 옅어지고 차례를 지내는 집도 줄어들고 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치열하게 귀성열차 예매 전쟁을 치르는 걸까.

귀성의 세계관은 아직 어른이 되기 전의 내가 머물던 시간선과도 맞닿아 있다. 그 시간은 직장의 책임도, 사회적 관계도, 생계의 부담도 짊어지기 전의 내가 있는 곳이다. 그때는 이웃 간의 온정이 남아 있었고, 우리 모두가 세상을 조금 더 낙관적으로 바라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젊었던 부모님이 계신 시간이기도 하다.

결국 귀성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시간의 회귀에 가깝다. 볼이 통통하던 어린 나와 아직은 건강하던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회귀, 다시 현실이 될 수 없기에 더 애틋한 추억과의 만남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모든 수고를 감내하고도 귀성열차를 타려 하는 것 아닐까.